석유가 사라져도 석탄은 남는다

석탄이나 석유는 다 같은 화석연료로,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원고갈 문제와 환경 문제를 생각한다면 두 가지 모두 사용량을 줄여야 할 에너지원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재생 가능한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기대보다 훨씬 더디다는 점에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개발은 늦고, 석유는 고갈돼간다면 과연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석탄이 석유 대체에너지로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의 가채연수가 얼마 남지 않은 데 비해 석탄은 가채연수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을 감안하면 석유는 40년이면 고갈되고 만다. 석유만이 아니라, 천연가스 그리고 원자력의 에너지원인 우라늄도 60년가량밖에 쓸 수 없는 상태다. 이에 비해 세계의 석탄 매장량은 1조t으로 현재 45억t가량인 연간 생산량으로 계산할 때 앞으로도 200년 이상 쓸 수 있다. 전 세계 석탄 매장량을 열량으로 환산하면 석유의 5배에 이른다.

석탄은 현재 난방용이나 화력 발전소의 연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석탄의 가스화 및 액화에 대한 효율적 기술이 개발된다면 석유의 대체에너지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석유가 중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는 데 비해, 석탄은 세계 여러 지역에 비교적 고르게 매장돼 있다는 점도 석유 대체에너지원으로서 석탄이 가진 장점이다.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먼저 산유국을 둘러봅시다. 산유국 중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가 몇이나 됩니까. 대부분 석유 이권을 움켜쥔 소수가 호의호식하는 가운데 일반 국민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또 강대국들이 산유국을 가만 놔둘 리 없습니다. 오늘날 중동이 이 지경이 된 것도 20세기 들어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열강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할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의 예는 이라크입니다. 이라크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다면 미국이 세계 곳곳에 적을 만들면서까지 과연 전쟁까지 벌였을까요.

`황금의 땅`으로 떠오른 아프리카

많은 사람들이 산유국 하면 중동을 떠올리는데 산유국으로서 아프리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산유국의 부패와 봉건성은 중동보다 훨씬 심합니다. 아프리카 산유국은 나이지리아, 적도 기니, 가봉, 카메룬, 콩고 등 대부분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에 몰려 있습니다.

적도 기니는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968년 독립한 뒤 90년대 중반 석유가 발견됐습니다. 현재 1인당 산유량은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풍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졌던 석유가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코코아를 재배하던 농민들은 오일 붐을 타고 너도 나도 도회지로 뛰쳐나와 전통 농업은 완전히 망가졌답니다. 조용했던 수도 말라보는 값비싼 외제 스포츠 카로 붐비고 으리으리한 스페인풍 대저택이 들어섰습니다. 밤만 되면 이웃 가난한 나라에서 건너온 매춘부들이 곳곳에서 호객행위를 합니다.

적도 기니 대통령인 오비앙 음구에마는 79년 삼촌을 처형하고 정권을 잡았고 석유가 발견된 이후에는 권력에 눈이 멀었습니다. 음구에마 대통령은 96년에야 처음으로 다당제를 허용하고 대통령 선거를 치렀는데 99%의 지지율로 당선됐습니다. 2002년에는 100%의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선거부정없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야당 지도자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인구 50만명의 적도 기니 국민들의 삶은 분명 조금 나아졌습니다. 석유에서 나는 부(富)의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극심한 빈부차, 전통농업 붕괴, 민주화의 지체 등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가봉도 비슷한 실정입니다. 적도 기니 음구에마 대통령이 석유권력을 지키기 위해 가혹한 탄압에 의존했다면 오마르 봉고 가봉 대통령은 탄압도 하지만 넘쳐나는 석유 판매대금으로 1백만 국민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봉고 대통령은 공직을 크게 늘렸고 국민들은 하는 일없이 먹고 사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가봉 국민들도 전통농업을 팽개치고 프랑스산 생수와 우류를 즐겨먹는 등 흥청거렸습니다. 택시 기사나 상점 점원 같은 하찮은 일은 토고나 말리같은 가난한 이웃 나라 이민자에게 모두 맡겼습니다.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산유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잔치가 끝나가는 거죠. 봉고 대통령은 놀고 먹는 공무원을 정리해야 되는데 그러면 권력기반이 약해지고, 하여튼 고민이 많답니다. 국민들은 다시 코코아 재배기술을 익혀야 하고 택시를 몰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검은 노예의 땅`으로 전락 위기의 `황금의 땅`

가봉의 서쪽, 나이지리아의 남쪽에는 상투메 프린시페라는 조그만 섬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상투메와 프린시페라는 2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고 인구는 15만명에 불과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90달러밖에 안되는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요근래 이 나라 인근 해역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말이 나돌고 서방 석유 메이저들이 연안을 탐사하면서 국민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프라디크 드 메네제스 대통령은 작년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뉴욕에서 아침을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산유국의 대통령이 되면 조그만 섬나라 대통령도 세계 유일 최강국의 대통령과 이렇게 아침상을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상투메 프린시페에도 광풍이 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 나라는 15세기 말 포르투갈에 정복된 뒤 포르투갈 죄수가 억류됐던 곳입니다. 또 아프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이 곳으로 강제로 이주돼 설탕농장을 일군 곳입니다. 1975년 독립한 이 나라는 이웃 아프리카 나라보다는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있습니다. 최근 3차례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2번이나 야당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송되는 노예들이 잠시 머물던 이 곳이 다시 석유라는 이름의 `검은 노예`가 될까 우려됩니다.

아프리카 산유국의 전제정치와 부패 등이 극성을 부리자 석유 메이저 기업의 나라들이 지탄을 받아왔습니다. 영국은 이런 비난이 부담스러웠는지 최근 `채굴산업 투명성 선도`(EITI·Extractive Industries Transparency Initiative)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 산유국 정부의 독재자들이 석유 메이저와 비밀거래를 해 싼값에 이권을 넘겨주는 대신 자신들은 막대한 판매수입을 빼돌리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산유국 정부와 석유 메이저 사이의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거지요.

지난 6월 17일에는 런던에서 EITI 포럼이 열리기까지 했습니다. 나이지리아 등 10여개 산유국은 영국이 마련한 프로그램의 취지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상투메 프린시페와 나이지리아는 공동 개발한 유전에서 2억7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이 포럼에서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부패와 독재 부문에서 악명높은 나이지리아가 개과천선하길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오 보입니다.

앙골라는 이런 움직임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제 비정부단체에 따르면 앙골라에서는 3분마다 어린이 1명이 죽어가는데 소수 집권층은 매년 10억달러를 꿀꺽하고 있답니다.

한반도에 석유가 났다면 오늘날 우리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에 있을까요, 그보다 못할까요. 지금만큼의 민주화를 이뤘을까요, 극심한 부정부패와 빈부차, 독재체제에 신음하고 있을까요. 미국이 북한을 지금처럼이나마 남겨뒀을까요, 아니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이라크보다 먼저 쳤을까요.

기름과 선한 가치(민주, 자유, 평등, 도덕성, 노동가치 등)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